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경당으로 와서
기도를 먼저 드렸습니다.



성전에 그려져 있는 성화와 성전 내부 사진입니다.
성화 속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중국인이 11명 그려져 있다는데 찾아보세요.

주문모 신부님 시복 2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의 전시실 모습입니다.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복자 주문모, 최인길, 강완숙의 이콘과 선물을 증정하는 모습입니다.

양신부님의 친형님이 직접 키우고 잡아서 요리해주신 소박한 배 위의 식사.
그러나 음식만큼은 만찬이었습니다.


양신부님이 로즈골드로 만들고 싶으셨다던 대성전 입구의 문
조금 낮춰서 동으로 만드셨는데.. 어마어마한 사이즈라 동도 무척 비쌌을 것입니다.

성당이 자리한 바이루 공원의 모습입니다.
논밭 밖에 없던 깡촌이었다는데
근처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지금은 아파트가 빽빽하네요.

샤오헝탕 성당의 94세의 지푸샹 노신부님이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성당의 숙소에서 자서전을 교정하고 계십니다.
저희에게 라틴어 인사와 축복을 건네셨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의 생가터
바위에 새겨진 '저우팅농'은 '주'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뜻합니다.
샤오헝탕의 노신부님이 1955년 이 곳에 오셨을 때
주신부님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주방 벽에 주님의 기도가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문화대혁명 때 부숴지고
현재는 빌라가 들어서 있습니다.
'9호'라고 쓰인 곳이 생가터입니다.
양신부님이 사진이나 기록 등을 찾느라 안 다니신 데가 없다는데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주일날 중국 신자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떠들지 않도록 '정' 팻말을 들고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양신부님이 한국에 다녀와서
신자들에게 정숙과 질서를 많이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틈만 나면 말씀을 많이 하셔서 현재는 아주 질서있고 정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양신부님이 한국에서 '주문모 신부님'의 한글을 사진으로 찍어오셔서
중국의 조각가에게 한글 모양 그대로 파게 하셨답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셔서 시간이 많아
양신부님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평신도 루선생입니다.
평신도 사목회나 단체가 없는 이 곳에서
자발적인 신자들의 희생과 봉사는 많은 감동을 줍니다.
한국에도 오셨었다니 낯이 익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음 방문 때 반갑게 맞아주세요.

마지막으로 항상 5도 정도 삐딱한 고개를 하고 찍으시던 신부님께
꼿꼿한 자세를 주문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완벽하게 꼿꼿하시네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경당으로 와서
기도를 먼저 드렸습니다.
성전에 그려져 있는 성화와 성전 내부 사진입니다.
성화 속에 아시아를 대표하는 김대건 신부님의 모습도 보입니다.
중국인이 11명 그려져 있다는데 찾아보세요.
주문모 신부님 시복 2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중국 한국 그리고 천주교]의 전시실 모습입니다.
이번 방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던
복자 주문모, 최인길, 강완숙의 이콘과 선물을 증정하는 모습입니다.
양신부님의 친형님이 직접 키우고 잡아서 요리해주신 소박한 배 위의 식사.
그러나 음식만큼은 만찬이었습니다.
양신부님이 로즈골드로 만들고 싶으셨다던 대성전 입구의 문
조금 낮춰서 동으로 만드셨는데.. 어마어마한 사이즈라 동도 무척 비쌌을 것입니다.
성당이 자리한 바이루 공원의 모습입니다.
논밭 밖에 없던 깡촌이었다는데
근처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지금은 아파트가 빽빽하네요.
샤오헝탕 성당의 94세의 지푸샹 노신부님이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시고 성당의 숙소에서 자서전을 교정하고 계십니다.
저희에게 라틴어 인사와 축복을 건네셨습니다.
주문모 신부님의 생가터
바위에 새겨진 '저우팅농'은 '주'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뜻합니다.
샤오헝탕의 노신부님이 1955년 이 곳에 오셨을 때
주신부님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이 그대로 남아있었고
오래된 집 안으로 들어가자
주방 벽에 주님의 기도가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문화대혁명 때 부숴지고
현재는 빌라가 들어서 있습니다.
'9호'라고 쓰인 곳이 생가터입니다.
양신부님이 사진이나 기록 등을 찾느라 안 다니신 데가 없다는데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주일날 중국 신자들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떠들지 않도록 '정' 팻말을 들고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양신부님이 한국에 다녀와서
신자들에게 정숙과 질서를 많이 강조하셨다고 합니다.
틈만 나면 말씀을 많이 하셔서 현재는 아주 질서있고 정숙한 모습이었습니다.
양신부님이 한국에서 '주문모 신부님'의 한글을 사진으로 찍어오셔서
중국의 조각가에게 한글 모양 그대로 파게 하셨답니다.
정말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지금은 은퇴하셔서 시간이 많아
양신부님의 오른팔 역할을 하고 계시다는 평신도 루선생입니다.
평신도 사목회나 단체가 없는 이 곳에서
자발적인 신자들의 희생과 봉사는 많은 감동을 줍니다.
한국에도 오셨었다니 낯이 익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다음 방문 때 반갑게 맞아주세요.
마지막으로 항상 5도 정도 삐딱한 고개를 하고 찍으시던 신부님께
꼿꼿한 자세를 주문하고 찍은 사진입니다.
완벽하게 꼿꼿하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