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 가해 강론

윤종국 마르꼬 신부
2020-03-21
조회수 1966

사순 제4주일  가해


● 1사무 16,1ㄴ.6-7.10-13ㄱ; 에페 5,8-14; 요한 9,1-41

(독서와 복음 본문은 「매일미사」 3월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사순 제4주일인 오늘 독서와 복음은 “본다”는 내용을 통해 빛과 어두움, 영적인 시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태어날 때부터 눈먼 사람인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은 질병이나 장애를 그 사람의 죄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질병과 장애를 죄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표징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 눈먼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눈먼 사람을 고치신 기적을 치료행위로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기적이 안식일 법을 어긴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결국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한 사람이 광명을 되찾은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이 기적을 통해 예수님을 공격하려고만 합니다. 이런 태도는 결국 하느님께서 행하신 기적에 대해 눈을 감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눈먼 사람은 육신의 눈을 뜸으로써 예수님을 구세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떴지만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업적을 몰라보는 진짜 눈먼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기적은 누가 진짜 눈먼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징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말미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우리도 눈먼 자라는 말은 아니겠지요?”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바리사이들의 죄는 눈이 멀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눈이 멀었으면서도 눈이 멀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먼 사람과 바리사이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해당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면 그것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어떤 사물을 보고도 그것을 올바로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육신이 가지고 있는 시력이 이럴진대 하물며 영적인 시력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영적인 눈도 육신의 눈과 마찬가지로 빛이 없으면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영적인 빛은 우리가 받아들여야한다는데 있습니다. 이 빛은 복음입니다. 이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을 통해 자신의 진짜 속마음을 살펴보고, 보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그런 나를 살게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마치 창가의 커튼을 치듯이 자신이 의식도 하지 못하는 사이에 복음의 빛을 거부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본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본모습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을 인정한다면 잘못과 죄의 원인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것을 인정하고 나면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탓을 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려움과 괴로움의 근원이 남의 탓이라고 여기면 내 책임을 모면할 수는 있지만 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고 하느님께로 더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려움과 괴로움의 근원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 힘들고 괴롭기는 하지만 하느님께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빛의 세계로 들어가서 내 안에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든지, 아니면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두려워하면서 계속 빛의 세계 바깥에 머무를지는 우리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순 제4주간을 맞이하면서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돌이켜보고 내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빛의 은혜를 청해야겠습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온 힘을 다해 애쓰고 계시는 질병관리본부 직원들과 의료관계자들, 봉사자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꼭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