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단체조직 및 신심 활동
<청년 레지오 창단>
<청년 레지오 창단>

성당 신축으로 안정된 본당 교우들의 신심생활은 그때까지 큰 몫을 해왔던 구역회장단(부인회)과 사목위원회를 뿌리로 새로운 가지를 치기 시작했다. 한편 본당 행정사무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 1965년 9월부터 사무장직을 개설하여 초대 사무장으로 이학수(바오로)형제가 취임하였다.


1959년에 중년 여성교우들을 단원으로 한 레지오 마리애 '상아보탑' 쁘레시디움이 창설되어 활동에 들어갔다. 1962년에는 '다윗의 적루' 쁘레시디움이 남자대학생 및 고등학생을 단원으로 활약하였으며 여대생과 여학생을 중심으로 '샛별' 쁘레시디움이 조직되어 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 1965년 복사단이 발족하여 김 미카엘을 초대 단장으로 하여 봉사하게 되었으며, 1964년 학생들의 자질 향상과 본당 내 신심활동을 목적으로 창립된 학생회가 1968년까지 활동하였다. 또 학생회의 발족에 앞서서 성인들로 구성된 성가대가 조직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 소화회라는 어머니 성가대로 개편하여 내실을 기하였다.







_사제관 신축

1966년 12월 조인환(베드로)신부가 부임하여 현 사제관 자리가 빈터로 있는 것을 보시고 이곳에 2층 건물을 신축하여 유치원과 사제관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본당신부의 의견을 받아들인 교우들은 신축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서 수산나, 박 마리아, 김 헬레나, 노 루시아, 김 마리아 등 부인회를 중심으로 모금 및 건축에 관한 실무에 착수하였다. 특히 서 수산나는 두 차례에 걸쳐서 150만환을 헌금하여 모금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67년 7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에 조인환 신부는 교구 관리국장으로 전임하였다. 


사제관 신축은 8대 최익철(베네딕도) 신부가 설계를 일부 변경하였고 교우들의 계속적인 정성어린 성금에 힘입어 1968년6월 8일 준공됨으로 비로소 본당 전체 윤곽이 잡혔다. 건축내용은 철근 콘크리트 슬라브식 4층 건물로 연건평이 179.16평,지하실 4.45평이었고, 소요된 총공사비용은 7,544,300원이었다.

<사제관과 유치원 앞의 조인환 신부>
<사제관과 유치원 앞의 조인환 신부>
_유치원, 주일학교 및 본당 묘지 마련
<돌제대 모습>
<돌제대 모습>

신축된 사제관 1층에 유치원 인가(1969.1.17)를 받아 원아 47명으로 성바오로 수녀원 수녀를 모셔다가 유치원(초대 원장: 최익철 신부)을 개원(1969. 3월)하였다. 또한, 이 기간 동안 복자회 수녀원에 위촉했던 주일학교를 윤 니콜라오 등 5명의 평신도가 맡아 새로운 체제로 주일학교 운영을 시작하였으며 6개 학급으로 증설시켰다. 


본당은 교우가 사망하여 장례를 치를 때마다 타본당의 묘지를 얻어 쓰는 불편이 많았다. 최신부는 5대 주임신부인 신인균(요셉)신부로부터 벽제 소재의 묘지 5만평을 260만원으로 인수 계약하고 곗돈 100만원, 은행융자 70만원 및 묘지를 일부 예매한 대금으로 전액을 충당함으로서, 본당의 구색을 하나 더 갖추게 되었다. 묘지 구입에는 사목위원 지휘정 요셉, 박태일시몬, 황석홍 베드로와 이 막달레나, 김 헬레나, 황 마리아, 박 마리아 등 여러 교우들의 노력이 컸다. 

_수녀원 개원과 성전 부분 수리

1966년 올리베따노 부산 성베네딕토 수녀회 소속 권금순(아우구스티나)수녀가 파견되어 전교수녀의 역할을 담당하였으나, 본당에 정식으로 수녀원 분원을 설치한 것은 1970년 7월 26일 성바오로 수녀원에서 유 울바노 수녀가 부임하여 성당 지하실에 분원을 마련하고부터이다. 이후 1984년부터는 다시 올리베따노 부산 성베네딕토 수녀회에서 분원을 운영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제관은 신축건물이지만, 성당은 15년간 수리 없이 지냄으로써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건물자체가 퇴락하여 있었다. 9대 주임신부 최석우 안드레아 신부는 "이런 건물에 주님을 모시는 것은 불경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차라리 신부도 성당 제의실에서 자야 마음이 편하겠다." 는 말과 함께 성당 수리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에 교우들은 자체 성금 200만원을 모아 성당 지붕을 다시 하고 외벽을 화강암으로 붙이는 대공사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