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껏 쌓아 올린 성전
전마리아는 자신이 살고 있는 한옥집을 미사장소로 제공하다가 수양딸 배 수산나와 함께 집터 전체를 가회동성전 부지로 기증했다
축성은 새로운 성전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식을 말한다. 당시 본당 건립 후 한국의 첫 주교로 취임한 노기남(1902~1984) 대주교가 1954년 12월 3일, 본당의 주보성인이신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대축일에 축성미사를 봉헌했다. 노기남 대주교님은 1984년 선종하시어 영원한 안식에 드셨다.
가회동 성당 종은 박형준 야고보 형제가 봉헌하여 1959년 8월 15일 성모승천 대축일에 노기남 바오로 대주교가 축성하였다.
박형준 야고보 형제(1915-1969)는 독립운동가이신 부친 박규명 선생과 함께 청년기까지 상하이에서 거주하였고 해방 후 귀국하여 가회동 성당에 교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가회동 성당의 첫 성전 축성에 즈음하여 독일에 종을 주문하여 봉헌하였다.
백민관 신부가 마련한 당시 예산이 충분하지 않아 강모래에 시멘트를 섞어 만든 블로크로 철근이나 기둥 없는 벽체에 나무 트러스 구조로 성전을 지었다. 이후 외부 벽체 일부를 돌 마감으로 보강하여 남부 유럽식과 고딕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옛 성전을 완성했다. 그러나 풍화가 이미 끝났고 붕괴위험이 있어 다시 오늘날의 건물을 짓게 되었다.
2012년 사제 서품 60주년을 맞은 백민관 신부는 당시 본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여 성전 건립의 청사진을 그렸다. 미국 가톨릭 구호단체의 원조를 얻어 성당을 건립하던 중 성신중고등학교로 발령을 받고 교사생활을 했다. 이후 신학대학 학장을 지내며 사제양성과 저술활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