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유스토(랑페르 드 브르트니에르 유스토) 신부 (1838–1866)


백 유스토 신부는 시몽 마리 앙투안 쥐스트 랑페르 드 브르트니에르(Simon Marie Antoine Just Ranfer de Bretenières) 신부로, 한국 성은 백(白)이다. 1838년 프랑스 샬롱쉬르손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1859년 성 쉴피스 신학교에 입학하였다. 외방 선교에 뜻을 둔 그는 1861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로 옮겼고, 1864년 5월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은 직후 조선 선교사로 임명된 백 유스토 신부는 볼리외 루도비코, 도리 헨리코, 위앵 루카 신부 등과 함께 프랑스를 떠났다. 홍콩과 상해, 요동을 거쳐 1865년 5월 충청도 내포에 상륙하여 조선에 입국하였다.

서울에 도착한 뒤 처음에는 베르뇌 시메온 주교의 거처에 머물다가 남대문 밖 정의배 마르코 회장의 집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조선말과 풍속을 익혔으며, 다른 동료들보다 언어 습득이 빨라 이듬해 초에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를 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1866년 1월과 2월에는 베르뇌 시메온 주교의 사목 활동을 도우며 많은 신자들의 고해성사를 들었다.

그러나 1866년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하였다. 2월 23일 베르뇌 시메온 주교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동료 선교사들에게 이를 알리고 자신도 체포될 것을 각오하였다. 이틀 뒤 정의배 회장이 체포되었고, 다음 날인 2월 26일 백 유스토 신부도 밀고로 체포되었다.

그는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지만 동료 사제들의 거처나 신자들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조선 사람인 여러분의 영혼을 구해주려고 왔으므로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겠소”라고 자신의 사명을 고백하였으며, 본국으로 돌아가라는 권유에도 조선에 남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1866년 3월 7일, 백 유스토 신부는 베르뇌 시메온 주교, 볼리외 루도비코 신부, 도리 헨리코 신부와 함께 새남터로 끌려갔다. 마지막까지 동료들과 함께 신앙을 지킨 그는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나이는 28세였다.

1968년 교황 성 바오로 6세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984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103위 한국 순교 성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시성되었다.



Fr. Just de Bretenières (Baek Justus), 1838–1866


Born into a noble family in France, Just de Bretenières joined the Paris Foreign Missions Society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864. Soon afterward, he was assigned to the mission in Joseon.

After a long journey through Hong Kong, Shanghai, and Liaodong, he entered Joseon in 1865. In Seoul, he stayed with Catholic believers and devoted himself to learning Korean. He progressed quickly enough to hear confessions and assist Bishop Berneux in pastoral work.

When the Byeongin Persecution began in 1866, Fr. Just was arrested and interrogated. He refused to reveal the whereabouts of fellow missionaries or the names of Catholics and declared that he had come to save the souls of the people of Joseon.

He was martyred at Saenamteo on March 7, 1866, together with Bishop Berneux and two other priests. He was twenty-eight years old.




P. Just de Bretenières (Baek Justus), 1838–1866


Nacido en una familia noble de Francia, Just de Bretenières ingresó en la Sociedad de Misiones Extranjeras de París y fue ordenado sacerdote en 1864. Poco después fue enviado como misionero a Joseon.

Entró en Joseon en 1865 y se estableció en Seúl, donde aprendió rápidamente el idioma coreano y comenzó a administrar el sacramento de la confesión y a ayudar al obispo Berneux.

Durante la persecución de 1866 fue arrestado e interrogado, pero se negó a revelar dónde se encontraban otros misioneros o quiénes eran los fieles católicos.

Murió mártir en Saenamteo el 7 de marzo de 1866, junto con el obispo Berneux y otros dos sacerdotes. Tenía veintiocho años.



白儒斯定(朗费尔·德·布勒特尼耶尔)神父,1838–1866


白儒斯定神父1838年出生于法国一个贵族家庭。1859年进入修院学习,后来立志投身海外传教,于1861年进入巴黎外方传教会修院,并于1864年晋铎。

晋铎后不久,他被派往朝鲜传教。经过香港、上海和辽东,于1865年5月进入朝鲜。到达首尔后,他先住在伯尔讷主教的住所,后来迁到丁义培会长家中,专心学习朝鲜语和当地风俗。由于语言学习进步很快,到1866年初,他已经能够为信徒听告解,并协助伯尔讷主教进行牧灵工作。

1866年丙寅迫害爆发后,伯尔讷主教首先被捕。白儒斯定神父知道自己也可能很快被捕,仍选择留下来。2月26日,他因告密而被捕,随后在捕盗厅和义禁府受到多次审讯和刑罚。

面对审讯,他始终拒绝供出其他传教士的住处和信徒的姓名,并表示自己来到朝鲜,是为了拯救朝鲜人的灵魂,也愿意为天主而死。

1866年3月7日,白儒斯定神父与伯尔讷主教、徐类斯神父、金亨里格神父一同被押往沙南基。他在那里被斩首殉道,时年28岁。

1968年他被列为真福,1984年由教宗圣若望保禄二世册封为103位韩国殉道圣人之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