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유진길 아우구스티노는 1791년 한양의 역관 집안에서 태어나 학문과 언어에 뛰어났으며 당상역관의 지위에 올랐다. 유교·불교·도교의 서적을 두루 탐구하던 중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인간의 영혼과 창조주에 관한 가르침에 깊이 매료되었다. 정하상에게 교리를 배운 뒤 입교한 그는 역관이라는 신분과 북경 왕래의 기회를 교회를 위해 사용하였다. 정하상·조신철 등과 함께 성직자 영입 운동에 참여하고 북경 주교에게 조선 신자들의 상황을 알렸으며, 교황 그레고리오 16세에게 보내는 서한 작성과 전달에도 힘썼다. 이들의 노력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과 선교사 파견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모방 신부와 샤스탕 신부, 앵베르 주교가 입국한 뒤에는 회장으로서 선교사들의 사목을 보좌하고 교우들을 돌보았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의금부의 혹독한 신문을 받았으나 교회의 가르침을 변호하고 배교를 거부하였다. 1839년 9월 22일 정하상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Yu Jin-gil (Augustine)
Yu Jin-gil was a learned interpreter who used his journeys to Beijing in service of the Church. Working with Jeong Ha-sang and others, he carried petitions for missionaries and helped lay the foundation for the Korean vicariate. He defended the faith under interrogation and was beheaded with Jeong on September 22, 1839.
Yu Jin-gil (Agustín)
Yu Jin-gil fue un erudito intérprete que puso sus viajes a Pekín al servicio de la Iglesia. Junto con Jeong Ha-sang y otros llevó peticiones de misioneros y ayudó a preparar el establecimiento del vicariato coreano. Defendió la fe durante los interrogatorios y fue decapitado con Jeong el 22 de septiembre de 1839.
劉進吉(奥思定)
刘进吉是一位学识渊博的译官,把往返北京的机会用于服务教会。他与丁夏祥等人递交迎请传教士的请求,为朝鲜代牧区成立奠定基础。受审时坚定为信仰辩护,于1839年9月22日与丁夏祥一同殉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