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현 요한
최창현 요한은 1759년 한양의 중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1784년 무렵 이벽에게 교리를 배우고 입교한 뒤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한글을 잘 읽고 교리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능력으로 초기 교회의 교리 교사로 활동하였다. 1785년 명례방 사건 뒤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았고, 교우들과 함께 교회 서적을 연구하고 복음을 전하였다. 가성직제도가 잘못임을 깨달은 신자들이 성직자 영입을 추진하자 윤유일·지황 등을 북경에 보내는 일에 참여했으며, 주문모 신부가 입국한 뒤에는 총회장으로 임명되어 교회의 실무와 신자 교육을 맡았다. 박해와 밀고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신부의 사목을 돕고 흩어진 공동체를 수습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혹독한 문초를 받았으며, 신앙과 교회의 일을 솔직히 인정하면서도 교우를 해치는 진술은 거부하였다. 1801년 4월 8일 정약종 등과 함께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Choe Chang-hyeon (John)
Choe Chang-hyeon was an early catechist noted for explaining Catholic teaching in Korean. He helped seek an ordained priest for Joseon and, after Fr. Zhou Wenmo arrived, served as chief lay leader of the Church. Arrested in 1801, he repented of a brief weakness and was beheaded outside the Small West Gate on April 8.
Choe Chang-hyeon (Juan)
Choe Chang-hyeon fue uno de los primeros catequistas y explicó la doctrina católica en coreano. Ayudó a conseguir un sacerdote para Joseon y, tras la llegada del P. Zhou Wenmo, fue el principal dirigente laico de la Iglesia. Detenido en 1801, se arrepintió de una breve debilidad y fue decapitado el 8 de abril.
崔昌顯(若望)
崔昌显是初期教会的重要教理教师,善于以韩文讲解信仰。他参与迎请正式司铎,周文谟神父入境后担任教会总会长。1801年被捕后悔过一时的软弱,于4月8日在西小门外殉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