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완숙 골롬바 (1761–1801)


강완숙(姜完淑) 골롬바는 1761년 충청도 내포 지방에서 양반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정직했다고 전해지며, 혼인한 뒤 천주교 서적을 읽으면서 신앙을 받아들였다. 1801년에 순교한 홍필주 필립보는 그의 아들이다.

강완숙은 신앙생활에 매우 열심이었으며, 1791년 신해박해 때에는 위험을 무릅쓰고 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다 자신도 투옥된 적이 있었다. 시어머니와 아들 홍필주에게 교리를 가르쳐 입교시켰지만 남편은 끝내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신앙 문제로 갈등을 겪기도 하였다.

이후 시어머니와 아들과 함께 한양으로 올라온 강완숙은 교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성직자 영입 운동을 경제적으로 도왔으며, 1794년 말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조선에 입국하자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주문모 신부는 그의 뛰어난 인품과 신앙을 인정하여 여회장으로 임명하고 신자들을 돌보게 하였다.

1795년 을묘사건으로 주문모 신부의 입국 사실이 드러나자 강완숙은 자신의 집을 신부의 피신처로 제공하였다. 당시 여성이 주인인 양반가에는 관헌이 함부로 들어가 수색하기 어려운 사회 관습을 이용한 것이었다. 이후에도 신부의 안전을 위해 여러 차례 거처를 옮겼으며, 그의 집은 신자들의 집회와 교리 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강완숙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하였다. 양반 부녀자뿐 아니라 과부와 머슴, 하녀까지 그의 권유로 교리를 배웠으며, 왕실 친척인 송 마리아와 며느리 신 마리아가 주문모 신부에게 세례를 받도록 이끈 것도 강완숙이었다. 신자들은 그가 지혜롭게 사람들을 이끌었고 열심한 남성 신자들조차 기꺼이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전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강완숙은 4월 6일 체포되었다. 혹독한 형벌을 여섯 차례나 받으면서도 주문모 신부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고, 형리들이 “이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 신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굳은 태도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옥에 갇힌 동안에도 동료 신자들을 격려하며 함께 순교를 준비하였다.

강완숙은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당시 나이는 40세였다. 마지막까지 그는 “비록 형벌을 받아 죽을지라도 신앙의 가르침을 믿는 마음을 고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라고 자신의 신앙을 밝혔다.



Kang Wan-suk (Columba), 1761–1801


Born in the Naepo region of Chungcheong Province, Kang Wan-suk embraced Catholicism after reading books about the faith. Known for her intelligence and strong faith, she became an important leader of the early Catholic community in Joseon.

After Fr. Zhou Wenmo entered Joseon in 1794, Kang was baptized by him and appointed to lead and care for women believers. When the priest’s presence was discovered, she offered her home as a hiding place. Her house later became an important meeting place for Catholics, and she helped spread the faith among people of different social classes.

During the 1801 persecution, Kang was arrested and repeatedly tortured but refused to reveal Fr. Zhou’s whereabouts. Even in prison, she encouraged her fellow Catholics to remain faithful. She was beheaded outside Seosomun on July 2, 1801, at the age of forty.



Kang Wan-suk (Columba), 1761–1801


Nacida en la región de Naepo, Kang Wan-suk abrazó la fe católica después de leer libros sobre el cristianismo. Por su inteligencia y profunda fe, llegó a ser una importante dirigente de la comunidad católica de Joseon.

Después de la llegada del P. Zhou Wenmo en 1794, recibió el bautismo y fue nombrada responsable de las mujeres creyentes. Cuando se descubrió la presencia del sacerdote, lo escondió en su casa, que también se convirtió en un importante lugar de reunión para los católicos.

Durante la persecución de 1801 fue arrestada y torturada repetidamente, pero se negó a revelar el paradero del sacerdote. Incluso en prisión animó a sus compañeros a permanecer firmes en la fe. Fue martirizada fuera de Seosomun el 2 de julio de 1801, a los cuarenta años.



姜完淑(高隆巴)1761–1801


姜完淑1761年出生于忠清道内浦地区。婚后,她通过阅读天主教书籍认识信仰并入教。她聪慧而坚定,很快成为朝鲜早期教会中重要的女性领袖。

1794年周文谟神父进入朝鲜后,姜完淑接受他的洗礼,并被任命为女会长,负责照顾和带领女信徒。1795年周文谟神父的身份暴露后,她将自己的家作为神父的藏身之处,并多次为保障他的安全而搬家。她的住所也成为信徒聚会、学习教理和传教的重要场所。

姜完淑向不同身份的人传播信仰,无论是两班妇女、寡妇、仆人还是婢女,都有人因她的劝导而入教。她在当时的朝鲜教会中发挥了十分重要的领导作用。

1801年辛酉迫害爆发后,姜完淑被捕。官府多次施以酷刑,企图逼她供出周文谟神父的下落,但她始终拒绝。即使身在狱中,她仍不断鼓励其他信徒坚守信仰。

1801年7月2日,姜完淑在西小门外被斩首殉道,时年40岁。临刑前,她仍表示,即使因受刑而死,也绝不会改变自己的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