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참된 신앙의 승리

의친왕과 의친왕비

의친왕과 의친왕비

고종의 다섯 번째 아들 의친왕. 그는 1894년 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이듬해 6개국 특파 대사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이후 미국 유학을 하며 의친왕에 봉해졌으며, 1905년에 귀국해 육군 부장, 적십자사 총재 등을 지냈다. 한일 합방 이후 일제를 배척하고 황족대표로서 독립운동가들과 가까이하며 임시정부를 도와 만주로 망명하다가 실패했다. 의롭고 총명했지만 역사의 베일에 가려져야만 했던 의친왕은 훗날 천주교를 받아들이고 왕비와 함께 가회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현재 고종황제의 능인 경기도 남양주시 홍유릉 내에 묻혀있다.

세례증명서

세례증명서

본당에서 보관하고 있는 영세문서 제1권에는 의친왕과 왕비가 세례 받은 기록이 있다. 세속명이 이강과 김숙, 세례명이 비오와 마리아로 각각 기록되어있다. 세례 당시에 왕비와 함께 있던 두 명의 조카는 본당의 신자였으며 눈이 멀어가면서도 천주학 서적을 손에서 놓지 않던 왕비를 보필했다

준주성범

준주성범

'그리스도를  본받음(Imitatio Christi)’이라는 원제를 가진 <준주성범>은 독일의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a Kempis, 1380~1471)가 저술한 책이다.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일반 신자와 수도자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규범을 제시하며, 1,2편은 주로 묵상과 기도로 이뤄져 있고 3,4편은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15세기 라틴어로 써진 이 책은 1938년 차일라이스 신부의 번역본으로 국내에서도 널리 읽혀졌다. 조카의 증언에 이하면 의친왕비가 가장 즐겨 읽던 책이었다고 한다.

의친왕 선종

의친왕 선종

의친왕의 딸인 이해경의 진술에 의하면 의친왕 선종 때 김숙(마리아)과 해경옹주 그리고 3명의 후궁이 임종을 지켜봤다고 한다. 당시 장례는 왕래하던 수녀들의 도움으로 이뤄졌으며, 황실을 배척했던 이승만 정권에서는 아무도 조문을 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사진 속에 왕비의 옆에 여학생 둘이 있는데, 의친왕비의 조카들이다. 송차선 주임신부는 이 두 여학생을 성당을 짓는 기간 중에 만나 사진을 찍고 최근의 증언을 들었다.